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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읽기/오분문학

[민들레의 영토]_이해인_세상을 통해 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수녀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들려옵니다

 

나의 자그만 안뜰에 남몰래 돋아나는 향기로운 풀잎, 당신의 말씀,

그 말씀 아니시면 어떻게 이 먼 바다를 저어 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직은 메마른 나무의 둘레, 나의 둘레,

꽃도 피지 않고 뜨거울 줄도 모르는 미지근한 체온,

비록 긴 시간이 걸려도 꽃은 피워야겠습니다

 

비 온 뒤의 햇살같이 안으로 스며드는 당신의 음성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가까이 들려옵니다

 

빛나는 새 아침을 맞기 위하여 밤은 오래도록 어두워야 한다고

아직도 잠시 빛이 있을 동안에 나는 끔찍이 이 세월을 아껴 써야 한다고

마음이 가난치 못함은 하나의 서러움

보화가 있는 곳에 마음 함께 있다고

아직도 가득 차 있는 나의 잔을 보다 아낌없이 비워야 한다고

.....

, 그래요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분명히 들려옵니다

(1971.3.3.)

 

 

이해인 수녀 민들레의 영토

 

 

'첫 시집을 펴내며'

누군가 나에게 왜 시를 쓰느냐고 물어 오면 나는 선뜻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합니다

애써 해 보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시를 쓰게끔 한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닙니다

 

혼자서는 흥겹게 부르던 콧노래도 막상 누가 정색을 하고 들어 보겠다면 당황해지듯,

몰래 흥얼거리던 내 노래에 새삼 귀 기울여 주실 모든 분들 앞에 나는 퍽도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생전 처음으로 입는 고운 설빔을 머리맡에 개켜 놓고 밤잠을 설치는 어린애처럼 설레는 기쁨 또한 숨길 수 없습니다

 

한 번 써 놓고는 잘 돌아보지 않았던 글들을 하나씩 손질해 가면서

나는 시를 쓴다는 게 얼마만한 아픔과 인내를 수반하는 것인지 새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수도의 길,

바로 나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이라는 것을...

 

누가 뭐래도 시는 나에게 있어 생생한 기도의 체험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거짓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머지않아 내가 주님 제단 앞에 엎디어 종신 서원을 하는 날,

나는 영원한 사랑의 약속과 함께 시와 더불어 살겠다는 결의 또한 새롭게 할 것입니다

(1975.12.8)"

 

 ( : 이해인 수녀님의 '민들레의 영토' 책 내용 발췌입니다)

 

 

 

이해인 수녀 민들레의 영토

 

 

민들레의 영토는 이해인 수녀의 첫 시집입니다

1976년도에 첫 발간된 이후로 찾는 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시집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이해인 수녀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글에서는

일반인 작가들의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구도자만이 풍기는 맑고 고요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통해 말하고 있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운입니다

그 목소리에 이렇게 고운 말씨로 대답할 수 있는 것 또한 행운입니다

 

요즘에는 자극적인 말투와 내용으로 베스트셀러에 짧은 기간 동안 오르는 현대시들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해인 수녀가 이 글들을 쓰던 1970년대에는

시인이라면 정말로 세상의 정수를 걸러내어 글에 담아야 한다고 여겨지던 시기였습니다

 

1970년대가 한국사에서 얼마나 혼란스러운 날들이었는지를 이해한다면

이해인 수녀님이 이처럼 맑은 목소리로 글을 쓴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 일임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구는 세상에서 벗어난 도피의 시라고 간혹 폄하하더라도

어쨌든 저든

이해인 수녀의 글에서 울리는 맑은 목소리를 귀하고 감사하게 받고 싶습니다

 

이런 맑음을 지키려고

그렇게나 부지런히 1970년대를 넘어 21세기까지 살아온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민들레의 영토는 내용도 좋지만

문체 자체에서 풍기는 맑음을 향한 마음이 더 좋습니다

 

목소리로 느낌을 전할 수 있는 말과는 달리

문체만으로 그 느낌까지 전해야 하는 글쓰기 작업이 쉽지 않음을 블로그에 글을 나누면서 항상 느낍니다

 

   그래서 매일 방문해 주시는 구독자 분들께 많이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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